이번 주부터 "옛 얼레빗" 자리에 이달균 시조시인님께서 쓰시는 <얼레빗으로 빗는 시조>를 매주 금요일 아침에 배달합니다. 시조는 우리 민족만이 가진 700년 전통의 정형시입니다. 지구상에서 정형시를 가진 국가는 몇 안 됩니다. 오랜 문화를 가져야 하고, 고유한 언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한시(漢詩)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시 짓기에 골몰해 있는 분 중에 시조 한 수 지어본 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일본의 하이쿠는 국민시가 되었고, 이미 세계적인 문학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습니다.
<3장 6구> 라는 완벽한 형식을 가진 시조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시입니다. 그러므로 분명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문단에서마저 서자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詩)인 시조에 관심을 갖지 않은 학자나 평론가가 많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소에서는 매주 금요일 아름다운 시조 감상 난을 마련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이 <얼레빗으로 빗는 시조>를 시조시인들과 함께 합니다.
인조실록 3권, 1년(1623) 9월 2일(기축) 기록에 보면 “사간원이 공주의 혼인을 검소하게 할 것 등을 청하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간원은 다음과 같이 임금에게 아룁니다. “혼인이란 부부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므로 반드시 존경과 예의로 해야 합니다. 또 옷이나 집의 사치스러움을 자랑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 공주의 혼인 예식은 내탕(임금이 개인적으로 쓰는 돈)이 마르고 백성이 어려워진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전하께서 순박하고 검소한 옷으로 모범을 보여 신하들을 이끌 때입니다.
그리고 여러 왕실과 사대부, 서민까지도 혼인할 때 사치가 벌써 걷잡을 수 없는 폐단이 되었으니, 법으로 엄히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범하는 자가 있으면 가장의 죄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요즘 결혼식 때 꽃값만 천만 원대를 쓰는 사람이 있다더니 사치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인 모양입니다.
1. 항아리 - 김상옥
종일 시내(市內)로 헤갈대다 아자방(亞字房)에 돌아오면 나도 이미 장(欌)안에 한 개 백자(白瓷)로 앉는다 때 묻고 얼룩이 배인 그런 항아리 말이다.
비도 바람도 그 희끗대던 진눈개비도 누누(累累)한 마음도 담았다 비운 둘레 이제는 또 뭘로 채울건가 돌아도 아니 본다.
아자방은 초정 김상옥 선생께서 운영하시던 인사동의 표구점을 겸한 골동품점이었다. 아자방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출가하여 성불하였기에 지었다는 칠불암에 있는 온돌선방이다. 한 번 불을 넣으면 100일간 식지 않는다는 그 아자방을 선생이 인사동 골동품점의 상호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없는 돈을 쪼개어 외국으로 가는 골동품들을 조국의 품에 있게 한 것도 아자방의 훈훈한 온기를 닮았다.
원래 초정 선생은 시, 서, 화, 도자기, 전각 등에 두루 조예가 깊었다. 그런 분이 항아리를 시의 소재로 한 것은 당연하다. 그저 어떤 대상을 여행하듯 한 수 읊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백자라 하지만 삶의 어룽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항아리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가고 포근해 진다. 누누한 마음도 담았다가 비우는 조선 백자 하나, 이제 더 채울 무엇도 없다. 그저 청자도 백자도 경제 논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통영의 예인 중 가장 많은 인자를 타고난 시인이라 생각된다.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모든 장례를 마친 뒤, 곧바로 식음을 끊고 저승을 따라간 결기는 아름다운 남아의 모습이다. 초정 선생의 임종으로 예전 재주 많은 시인들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