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별렀던 백담사행이다. 만해스님이 출가해서 머물렀던 곳이고, 요즘 치매에 걸렸다고는 하던데 내란죄 선고를 받아 징역을 살았던 전직 대통령이 수양(?)하겠다며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원통불가마에서 홍천의 거센 물소리와 TV소리인지, 대화를 하는 소리인지 어렴풋이 두런거리는 소리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서 아침 일찍 용대리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백담사까지 마을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버스를 타러 이동하다보니 바닥에 밤송이 몇 개가 떨어져 있다.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밤송이인데 아마 전날 비바람에 놀라 떨어진 모양이다. 이른 아침인지라 버스엔 스님 세 분과 부부인듯한 등산객 2명이 함께 탔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찰나 동네 주민인 듯한 불자 한 분이 급하게 올라탔다.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향하는 길은 이내 놀라움으로 변했다.
비좁은 길을 버스가 곡예운전을 하며 오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아래로 흐르는 푸른 물은 천도복숭아의 즙이었다. 구비구비 길을 돌 때마다 다른 경관이 펼쳐졌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곳곳에 수놓아진 하얀 구름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낭떠러지 곳곳에는 위태위태 해보였지만 오랜 세월을 달관한 듯 살아온 소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나무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르자 스님과 불자들이 재빠르게 사라졌고 등산객도 등반코스로 사라졌다. 버스에서 천천히 내려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백담사 앞으로 길게 뻗은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 위에는 스님 한 분이 낙엽을 쓸고 있다. 이른 시간인지라 백담사를 둘러보기 위해 온 관광객은 아무도 없다. 약간은 뻘쭘했다. 원래 아침 식전엔 남의 집 방문을 금기하는 것이 우리나라 풍습이다. 그런데 사찰인지라 아침공양은 이미 마쳤을 터. 나는 아주 천천히 사방팔방을 둘러보면서 느릿느릿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이 지역엔 전날까지 비가 내렸던지라 냇가에는 물이 아주 힘차게 흘러 내렸다.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맑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흐르고, 나무 숲이 가득한 산중턱엔 한줄기 하얀 구름이 걸쳐져 있다. 선계가 있다면 아마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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