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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후기

힘들고지칠때------/영화또보기♣

by 자청비 2019. 7. 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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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가 어제 개봉됐다. 어제 사무실 퇴근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나로선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역사를 왜곡했다는 설,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설 등등 논란이 많은 영화다.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진 후 개봉전에 영화에서 세종의 중전 역을 했던 여배우 전미선이 우울증이 도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은 종래 알려진 대로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인데 영화상에서는 이미 가짜로 판명된 설인 '신미'라는 승려가 만들었다는 설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 침해 논란은 어느 소설가가 신미스님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소설화했는데 그 내용을 영화에 그대로 갖다다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출판사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는데 법원은 신미 창제설은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것으로 소설내용을 갖다 쓴 것으로 볼 수 없다하여 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처분 판결을 내렸다.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논란을 잠깐 짚어보자,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친히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도 세종이 직접 창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신미 스님의 이름이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한글반포후인 1446년 소현왕후(세종의 부인) 천도제 때였다는 등의 근거로 신미스님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세종이 직접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정설이었다. 필자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알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의문은 늘 남아 있었다. 아무리 세종이 천재라고 하지만 어떻게 한글 자모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영화는 그러한 의문을 어렴풋이나마 해소해준다. 물론 영화적, 소설적 상상력이 가미됐을 것이라는 점은 추측이 된다. 다만 영화 자체에서 신미스님이 세종에게 절하지도 않고 막대하거나,  '~했어요' 따위 어법이나 말투, 궁중 예절 등이 당시 시대상황과 전혀 맞지 않고 어색하여 거슬렸지만 그러한 점은 논외로 한다.


한글창제과정은 당시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외국의 소리문자를 비교, 분석한 끝에 만들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세종이 산스크리트어와 기타 외국 문자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리고 현대식으로 따져서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등을 모두 어떻게 알고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아니 날 수 없다.

오로지 중국밖에 모르던 유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를 알았을 리는 없다. 그러면 유력한 것은 불교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산스크리트어가 소리문자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세종이 집현전 학자를 유학시켜 이를 터득하게 하고 만들었다는 상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세종은 이미 통달해 있는 사람을 놔두고 생판 모르는 유자를 유학시키는 비효율적인 사람은 아닐 듯 싶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어떤가. 불교는 철저히 배척당하고 오로지 공자 말씀이 불변의 진리라고 외치던 유교 지배 사회. 그러면서도 공자 말씀대로 하기보단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공자를 앞세웠던 유자들의 세상이었다. 불교는 감히 서울 사대문안에 발도 못붙이던 시대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스님들이 한글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드러날 수 없는 일이다. 왕이 직접 만들었다고 해도 냉랭하고 반대상소가 빗발쳤다는데, 하물며 스님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했다면 당시 유자들의 반발은 극에 달하고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지 감히 상상이 안된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에 신미 스님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소헌왕후의 천도제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할 때 보여졌을 뿐 한글 창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때문에 영화에서도 세종은 비밀리에 스님들과 함께 만들었지만 이같은 사실을 공개할 때 유자들의 반발로 보급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유자들에게 창제의 공을 돌리려 한다. 이 때문에 신미 스님과 크게 갈등하게 된다. 그런데 소헌왕후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지 때문에 신미가 타협을 하고 집현전 학자들을 통해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충분히 합리적이고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라 있을 법한 내용이다.


그러나 일부에선-특히 한글애호가나 한글관련 단체 등 - 이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다면서 망해야 하는 영화라고 한다. 왜 그런지 이유가 짐작이 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한 사람이 확인되는 문자로 그 창제자가 일국의 왕인데다 글을 모르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글을 익히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자랑스럽고 바꿀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에 덧붙여 각종 기록에도 세종이 혼자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영화에선 마치 신미스님이 거의 모든 것을 다 만든 것처럼 이야기 된다. 필자 역시 세종대왕이 한글창제에 앞장 섰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많이 아쉽기는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기록은 항상 선택적이다. 또 조선왕조의 기록은 항상 승자의 시각이고, 베푸는 자의 시각이다. 문자를 아는 사람이 유자였고 기록하는 사람이 유자였다. 세종이 친히 누구누구와 뭐뭐 했다고 기록을 남길 수는 없다. 기록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제 잠깐 여유를 갖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즐겨봤던 대장금은 단 한줄의 역사적 사실에 의존해 드라마를 제작하였는데 몇십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에서 즐겨보는 드라마로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허준이라는 드라마도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사실이 많아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가 무엇이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차피 역사물 드라마나 영화는 사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면 그건 다큐멘터리이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혹자는 그러한 점을 감안하고도 이 영화는 도가 지나쳤다는 주장도 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로 인해 어린 학생들이 신미스님이 한글을 만든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교육이 바로 잡으면 될 부분이다. 필자가 크게 느꼈던 것은 영화속에서 세종이 보여준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중국을 넘어서겠다는 그 마음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영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세종이 혼자서 그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신미 스님의 도움을 받아서 했든, 집현적 학자의 도움을 받아서 했든 세종이 앞장 서서 만든 것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동력은 바로 훈민정음 서문에 나와 있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음성)이 서로 맞지 않으니 이런 이유로 글을 배우지못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들었으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 편히 사용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한글은 당시 시대 분위기상 숱한 박대 속에 서민층과 부녀자들 사이에서 면면히 이어져오다가 500년이 지나면서 나라의 문자로 정착되었고 다시 60년이 지나면서 최근에는 한류붐에 힘입어 세계인이 공부하고 싶어하는 문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글은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에 의해 많이 오염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문자영향을 많이 받았던데다 일제 36년을 겪고, 미군정기를 거친데다 현대화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으로 이미 지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하루게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신속하고 적합한 언어 생산이 이뤄지지 않아 외국어를 그대로 들여와 쓰다가 외래어로 고착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 국제화, 세계화 라는 미명하에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지면서 오염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가장 손쉬운 예로 우리가 흔히 찾는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꾸고, 유명 대기업들이 종래의 기업명칭을 영어대문자 두개 혹은 세개로 바꾸는 등 무수히 많다. 따라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떠들기만 할 게 아니라 한글의 사용 및 발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제치하에서 왜 뜻있는 우국지사들이 한글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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