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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한국의 서사시, 그리고 공감

한라의메아리-----/문예창작 모음

by 자청비 2022. 9. 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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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과바람문학 11집에 실린 문화비평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 그리고 공감>

 

 

아프고 슬픈 역사이지만 이토록 눈이 부실 수 있을까. 이제는 당당하게 전세계인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숱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이만큼 왔다고

한국의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역사가 한류에 열광하던 외국인들에게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설 파친코와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파친코덕분에.

소설 파친코는 일제치하 부산 영도에 사는 한 평범한 가정-아버지가 언청이인데다 다리를 저는 불구라서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다-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그의 손자대까지 4대에 걸친 삶을 그리고 있다. 일본에게 핍박과 수탈을 당했던 20세기 초반 한국의 역사, 그마저도 일본이 진심어린 사과조차 없이, 감추고 지워버리려는 그 역사, 그 기나긴 어둠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낸 한국인의 역사를 전세계에 드러냈다. 원작소설이나 드라마를 본 외국인들은 이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왜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지, 한국이 왜 그리도 일본을 용서하지 못하는지.

 

소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씨가 오랜 작업 끝에 내놓은 소설이다. 2017년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된 이 책은 낯선 제목에 생소한 소재였지만 그해 뉴욕타임스, BBC 등 유수의 언론에서 올해의 올해의 책 Top 10“에 선정됐고, 전미도서상 픽션부문 최종후보작에도 오르는 등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꼭 추천하고 싶은 소설로 꼽았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번역본이 출간됐다.

이 소설이 높은 인기를 끌자 세계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업체들이 서로 드라마화하겠다고 나섰다. 최종 낙점받은 곳이 애플TV+이다. 드라마 파친코는 개봉하자마자 OTT 통합 랭킹에서 1위를 달렸다. OTT시장에서 점유율 4위에 그쳤던 애플TV플러스가 무려 1천억원을 투자한 효과를 본 셈이다. 제작비가 역대급이다.

이 드라마에 대한 외국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BBC눈부신 한국의 서사시라는 제목으로 나온 파친코 리뷰 기사에서 배우들의 열정적이면서도 절제된 감정, 시간을 달리는 내러티브의 우아함, 그리고 놀라운 시각적 아름다움이 있다고 평했다.

뉴욕타임즈는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미국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가운데 이어지는 웰 메이드 K드라마의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대중문화 잡지인 롤링스톤도 특별하게 느껴질 만큼 예술적인 기교가 있으며 우아하게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3대 일간지인 리베라시옹(Libération)한일관계의 풀리지 않은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은 향수병, 고향 상실, 통합의 또 다른 경험을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평했다. 이 신문에서 한일관계의 풀리지 않은 문제라는 언급은 꽤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과 드라마가 왜 이렇게 외국인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을까?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한국의 서사가 미국에서 만들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밑바탕에는 바로 한류를 일으킨 문화의 힘과 아울러 한국의 매력그리고 작품을 꿰뚫는 보편적 공감성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 영상물은 아무리 좋은 컨텐츠라고 해도 시청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만들어지기 어렵다. 유수의 외국 영상업체들이 막대한 투자비를 들이면서 한국의 서사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인,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알고 싶게 만드는 그 원천은 결국 한국()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새삼 소프트파워의 중요성과 강력함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작품소재의 보편적 공감성도 인기를 끄는데 한 몫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일지라도 핍박받던 식민지의 피지배 주민 그리고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디아스포라 이야기는 인류 보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게 보면 이 작품은 가족사()이고, 어느 가족이나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가족을 위해 갖은 희생을 감내했던 선자와 같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이야기가 세계인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이나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한국드라마이거나 오락적 요소 때문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인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때문이라는 분석이다그동안 화려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 상상도 못했던 신기술 그리고 롤러코스터식 스릴, 거침없는 로맨스 등으로 나타나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세계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 하지만 보편적 공감성이 없이 무한한 상상력만 펼치는 미국지상주의 블록버스터에 세계인들은 지쳐가고 있다. 1980~90년대 중국영화-엄밀히 말하면 홍콩 느와르-가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거의 외면당하고 있다. 공감력 떨어지는 소재와 중화제일주의만 앞세운 탓이다. 문화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사족(蛇足)을 덧붙인다. 이 땅의 허접한 정치가들은 온갖 권모술수를 쓰며 특혜를 누리는 동안 이 땅의 힘없는 백성들은 가족을 위해 갖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면 두 팔을 걷어부쳤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최루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한류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오늘도 소설 파친코의 첫머리를 곱씹어본다.

역사가 우릴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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