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은 재위기간에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완전 병합하였고, 한강 하류유역으로 진출하여 서해안지역 공략의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동북으로는 함경남도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래서 새로이 신라 영토로 편입된 지역들을 직접 둘러보고 이를 기념하고 경계로 삼기 위해 창녕비, 북한산비, 마운령비와 황초령비 등 4개의 순수비를 세웠다.
조선조 숙종 38년(1712년) 조선과 청(淸)나라 사이의 경계비가 백두산에 세워졌다. 백두산은 원래 우리 땅이었으나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실질적 지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조선조 세종 19년(1437년)에 6진(六鎭)이 설치되면서 백두산과 그 동서의 두만강.압록강이 우리나라의 국경선이 됐다. 그러나 그 원류인 백두산 근처의 경계는 불분명해 청과의 분쟁이 빈발하자 당시 청나라 관원과 조선관원의 합동 현지답사로 양국의 경계선을 확정짓는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졌다.
민간단체인 한국땅이름학회가 우리나라의 동서남북 땅끝 4곳과 땅끝 섬 4곳에 한국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위도,경도 등 정확한 위치와 역사적 유래 등을 새긴 표지석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학회가 표지석을 세우려는 곳은 함북 선봉군 우암리 동단(동)과 평북 용천군 진흥노동자구 서단(서),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남단(남), 함북 온성군 풍서동 북단(북) 등 땅끝 4곳과 독도(동)와 평북 신도군 비단섬 노동자구 마안도(서),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마라도(남)와 마라도 남쪽 이어도 등 땅끝 섬 4곳이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서 국경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촌 곳곳에서 국경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독도분쟁을 보노라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지금이라도 민간단체가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조속히 추진돼야 할 일이다. 2005.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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