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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논란

세상보기---------/마음대로 쓰기

by 자청비 2005. 7. 1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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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정부의 입시제도 방침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서울대 평교수 모임인 교수협의회는 8일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외부 인사들이 포함된 최고 의결기구 성격의 서울대 평의원회도  긴급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과 이종섭 입학관리본부장이 7일 당정 입장을 공식 반박한 데 이어 교수들까지 나선 이유는 정부의 대학 자율성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자체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서울대 출신들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탄생한 다양한 정권속에서 '서울대'라는 이유 하나로 정부요직을 누려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군사독재정권시절에는 학생들의 민주화 염원도 외면한채 독재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부 각계에서 권력을 누려오지 않았던가. 그러던 것이 참여정부 들어 비서울대 출신에게 많이 밀려난 것으로 한 언론이 분석 보도됐다. 이 보도의 의도도 흉악하거니와 이같은 보도가 서울대 교수들로 하여금 그동안 정부와의 밀월을 깨뜨리도록 했는지 모른다.

이들 서울대 교수들은 참여정부가 서울대 입시안을 부정하면서, 대입 서열화와 획일화를 폐지하고 다양하고 특화된 대학육성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평등하고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에 대해 '서울대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대학의 서열화 타파를 위한 대안으로 지방대학을 분야별로 서울대 수준으로 집중 육성하는 방안과 일부 대학과 학과를 서울대와 대등한 수준으로 육성하는 방안들이 모두 '서울대 폐지론'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대 교수들이 흥분해 항변하고, 과거 군사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던 일부 보수언론-물론 여기에도 서울대 출신들이 상당수 포진해있다-들이 일제히 참여정부의 이같은 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고졸출신 대통령의 '고학력 콤플렉스', '한풀이'라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다. 치졸해도 이렇게 치졸할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서울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2년쯤 전 언론인터뷰에서 학벌타파를 희망하는 시민의 뜻을 '포퓰리즘'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정총장은  서울대 출신이 국가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에 대해  “어느 시대든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가 있다. 서울대는 사회를 리드할 정예의 지도자를 키워내야 한다.”는 말로 정당화했다. 이같은 발언은 서울대 출신의 정 총장이 학벌기득권 세력으로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학벌로 인한 폐단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교육은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으로 다 망가졌고 사회에서는 학벌차별 때문에 개인의 뛰어난 능력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학벌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이 바로 서울대인 것이다. 서울대 출신들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때부터 남한사회 권력 있는 자리를 독차지하고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정권이 망해도 그들은 계속 남아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왔다.

서울대는 살인적인 입시 전쟁의 원흉으로, 신분의 수직상승이 가능한 메커니즘으로, 한국 사회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점하는 불가사리로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대 졸업생은 내각·국회의원·1급 이상 공무원의 절반 가량을, 검찰과 법원·대형 로펌의 경우는 60∼9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개인의 능력을 떠나 일단 서울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고교에서는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서울대를 우선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국내 최고인재를 모아 놓고도 서울대는 세계 수준의 인재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교육을 실시해 왔다. 한 예로 일전에 전세계 대학을 대상으로 한 대학교육 경쟁력에서 서울대는 151위(상하이 교통대 조사)와 118위(영국 더 타임스 조사)로 평가된 적이 있다.

이같은 서울대의 대학교육 경쟁력을 볼 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서울대가 한 일은 기본교육과정을 이수한 보편적인 학생들을 데려다가 세계 수준-혹은 국내 최고-의 인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국내 최고 수준의 학생들을 데려다가 우리나라 밖에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로 만들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의 교육경쟁력은 신입생의 능력과 교육 과정을 마친 졸업생 사이의 능력 격차가 얼마나 크냐로 평가되는 것이지, 입학하는 학생이 얼마나 우수하냐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대학정책과 관련 서울대 교수들은 "군사정권이래 억압적인 정권 운운"하며 대학 정책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라며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5공이후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대학의 자율적 입시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과연 어느 시절에 정부정책에 반기를 들 생각이나 해 본 적이 있었는가 라고 반문하고 싶다. 게다가 대학의 사명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학벌타파'라는 사회적 대의명분에 대해 겸허히 수용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지성인의 도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사회적 요구를 거부한다면 이는 역시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유지하겠다는 의도일 수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의 입시가 초 중 고교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실질적으로 제시해왔다. 지금까지 공교육의 교과과정은 유감스럽게도 모든 내용과 방식에서 서울대 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모든 교육의 목표였고,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서울대에 합격하는 것은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최고의 꿈이었다. 그래서 대학입시에 나오지 않는 영역, 예컨대 말하기, 글로 자기표현하기, 대인관계, 창작 글쓰기,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인성 함양교육 등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교육은 공교육에서 무시돼 왔다. 이처럼 우리 공교육이 왜곡된 것에 대해 서울대가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이 책임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서울대 예찬론자들의 주장하는 일류대학은 키워야 하고 순위경쟁을 부추겨 초일류대학이 많이 생겨날수록 교육경쟁력과 나라의 미래는 보장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현대는 한 사람의 인재가 수만명의 사람, 나아가 국가도 먹여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여기에서 순위경쟁은 학생들간 순위경쟁이 아니라 대학교육 경쟁력이 갖는 순위경쟁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일류대학은 우수한 인재들을 데려다 범재로 만드는 곳이 아니라 기본교육이 갖춰진 학생을 데려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인재로 길러낼 수 있는 대학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초일류대학은 기본교육을 거친 학생들을 데려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로 키워낼 수 있는 대학을 의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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