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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전적지 현장을 가다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5. 11. 2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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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부터 18일까지 6일동안 일제의 지하갱도 전적지 및 강제연행 등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왔다. 조사일정은 일본 동경으로 이동해 요코스카를 거쳐 나가노현, 나라현, 효고현, 오키나와현으로 이동했다. 워낙 장거리 이동이라 시간에 쫓겨 강행군을 하기는 했지만  일본 출장이 처음인지라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알찬 시간이 됐다. 이번 조사에는 한라일보 일제동굴전적지 특별취재팀 4명과 제주대탐라문화연구소 2명,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위원 2명 등 모두 8명이 함께 했다. 해당기관의 보고서와는 별도로 현장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정리했다.

 

11/13 요코스카시(橫須賀市) 사루지마(猿島)

요코스카시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이 섬은 동서길이 200m, 남북길이 450m, 해안길이 1.7km, 표고 40m의 아주 작은 섬이다. 이 섬이 원숭이섬이라고 불린데는 1253년 5월 당시 방주가 항해도중 태풍으로 길을 잃어 해매던 중 흰원숭이가 나타나 이 곳으로 안내했다고 해서 붙여졌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이전 미해군 페리제독이 이 섬에 상륙했다고 해서 ‘페리지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무인도였으나 일본이 개항이전 외국선박의 빈번한 출몰에 따라 동경만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보고 명치유신 이후인 1877년 해군성이 포 4문을 설치하면서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종전후 미해군이 이 섬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967년 미해군으로부터 다시 돌려받았으나 일반인의 출입이 완전 자유롭게 허용된 것은 1995년부터 였다.

 

 

이 요새는 하라다 아키히로(59 原田章弘)씨의 안내로 둘러봤다. 하라다씨는 요코스카 시의회의원으로 시민단체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강제연행진상조사단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섬에 들어서 몇걸음 가자마자 조그만 건물이 눈에 띤다. 수비대 병사(兵舍)로 조그만 건물에서 20여명이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비대는 종전 후 섬에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곳이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요새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울창한 숲 한가운데 폭 4m 깊이 5~10m 깊이로 파놓고 오른쪽에 지하호를 파놓고 병사, 탄약고 등으로 사용했다. 흙벽은 성벽을 쌓듯이 돌로 막아 놓았으나 지하호를 파놓은 곳은 붉은 벽돌로 마감하고 창이나 출입구 등을 달아놓았으나 공개를 하지 않아 내부의 모습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곳은 병사, 탄약고, 지휘소 등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군데군데 놓여진 인공 지하터널을 지나 섬의 상층부 쪽에 다다랐다. 바로 요코하마 항만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보인다. 이 곳에는 대포를 배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요코하마 항만 길목이 보이는 곳에 포대를 놓았던 흔적이 4곳이나 됐다. 동경만을 출입하는 외국선박(군함)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으나 목적대로 쓰이지 않고 태평양 전쟁 당시 대공용으로 일부 사용됐다고 한다.

 

이 섬 정상에는 대공초소가 있다. 원래 막부시절에는 이 섬 정상이 놀이터로 쓰였으나 섬이 요새화 되면서 동경만 출입선박의 감시 및 대공용 초소가 만들어져 사용됐다고 한다.


이 곳을 안내했던 하라다씨에 따르면 요코스카시를 포함한 가나가와현 일대에는 지하호가 무려 72개소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긴 지하호는 총연장 13km로 해군 지하공작창으로 활용됐던 것으로 현재 요코스카 해군기지 내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한달전쯤 미리 신청하면 일부는 볼 수 있으나 내부를 상세히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가나가와현 일대 지하호 작업을 위해 연인원 50만명이 강제동원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가운데 조선인은 2만여명 동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인 강제동원에는 요코스카 재일본협화회라는 단체가 앞장 선 것으로 전해졌다. 협화회는 일제시대 당시 일본이 중국인, 한국인, 만주인 등이 서로 화합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어용단체였다.
하라다씨는 지난 91년 뜻있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강제연행진상조사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지하호에 대한 실측조사와 함께 학적부 등을 뒤져 조선인 강제연행자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라다씨는 “조선과 일본, 중국인 들에게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평화운동을 위해 이같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라다씨는 일본내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이 없다는 주장도 있고, 왜 일본에 해가 되는 이런 활동을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하라다씨는 활동을 하면서 애로사항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패전후 공문서를 대부분 소각해버려 증거서류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증언자들이 나이가 많아 기억이 불분명하고 당시 강제연행됐던 젊은 사람들은 귀국해버려 증언자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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