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뉴스 매거진 방송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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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우리말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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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우리말
우리가> 시간입니다. 몰라서 틀리기도 하고, 또는 습관적으로 잘못 쓰고 있는 우리 말들을 바로 잡아보는 시간인데요. 수원 농촌진흥청
농업공학연구소 성제훈 박사님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정 오늘은 또 어떤 아리송한 우리말들을
바로 알려주실 건가요?
성 저는 두 살 배기 예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아이’와
관련된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두 살배기’라고 했는데요. 가끔 ‘두 살박이’라고 발음 하시는 경우가 있죠. ‘배기’와 ‘박이’는
아주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뭔가가 안에 박혀 있거나 ‘박다’의 의미가 살아 있으면 ‘박이’고, 그렇지 않으면 ‘배기’입니다. 점박이,
덧니박이, 외눈박이, 오이소박이, 붙박이, 장승박이, 토박이 따위는 뭔가 안에 박혀있다는 뜻이 있으므로, ‘박이’를 씁니다. 소고기의 한 부위인
‘차돌박이’도 차돌처럼 단단한 기름덩어리가 박혀있어서 붙은 이름이잖아요. 그래서 ‘차돌박이’가 맞죠.
그러나 ‘두 살배기’
애는 다릅니다. 애 이마에 ‘두 살’이라는 단어가 박혀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린아이를 나타낼 때는 ‘배기’를 씁니다.
정 그렇군요.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들, 좀 더 해 주시죠.
성 세상에 있는 모든 어린아이는 다 예쁜데요. 흔히 아이를 보고 “저 애기 참 이쁘다‘라고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애기’가 틀렸습니다. ‘애’는 ‘아이’의 준말이므로, ‘아이’라고 하거나, ‘애’라고 해야지 ‘애기’라고 하면
안 됩니다. 또, ‘이쁘다’도 틀렸습니다. ‘예쁘다’가 맞습니다. ‘이쁘다’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앞으로 ‘두 살배기’ 제 딸을
보시거든, “저 애기 참 이쁘다”라고 하지 마시고, “저 애 참 예쁘다”라고 해 주세요.
정
제가 혹시 성 박사님댁 아이를 만나게 되면 꼭 “저 애 참 예쁘다”라고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내용, 소개 좀 해
주시죠.
성 일상생활에서 자주 틀리는 것 몇 개만 더 소개드릴게요. 제가 방금
‘소개드릴께요’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것을 글로 쓸 때는 ‘소개드릴게요’로 써야 합니다. 의문형인 ‘-할까요’만 쌍 ㄱ을 쓰고, 평서문에서는
그냥 기역을 써서 ‘-할게요’라고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드라마 제목으로 나왔던 ‘사랑할께요’도 ‘께요’라고 쓰면 틀리고 ‘게요’라고 써야
합니다. 방송에서는 이런 것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또, 자주 틀리는 것 중의 하나가, ‘작다’와
‘적다’입니다. ‘작다’는 ‘크다’의 반대말이고, ‘적다’는 ‘많다’의 반대말입니다. ‘크다/작다’, ‘많다/적다’ 이렇죠. 따라서, 어떤
행사장에 모인 사람을 보고, ‘사람이 적네’라고 하면, 모인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고, ‘사람이 작네’라고 하면, 모인 사람들의 키가 크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작다’와 ‘적다’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또, ‘굵다’와 ‘두껍다’다도 자주 틀립니다.
운동선수는 근육이 잘 발달되어있죠. 그런 모습을 보고, “팔뚝이나 다리통이 두껍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두꺼운 게 아니고, 굵은 겁니다.
굵다[국ː따]’는 ‘길쭉한 물체의 둘레나 너비가 넓다[널따]’는 의미고, ‘두껍다’는 ‘두께가 크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두꺼운 책, 두꺼운
옷처럼 쓰고, 손마디가 굵어서 반지가 들어가지 않는다처럼 쓰죠.
정 그렇군요. 발음이 비슷해서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정확한 발음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되는군요. 지금 내용을 소개하시면서 ‘넓다’ 발음을 흔히들 하는 ‘넙다’라고
발음하지 않고, ‘널따’라고 발음하셨는데, 정확히 [넙다]가 맞나요, [널따]가 맞나요?
성
우리말에는 겹받침이란 것이 있습니다. 두 가지 자음을 써서 만든 받침으로 ‘ㄺ’,‘ㄻ’, ‘ㄼ’,‘ㄳ’ 따위가 있습니다. 이 겹받침 발음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많이 틀리는 발음이 ‘ㄼ’입니다. ‘ㄼ’은 대표발음이 ‘ㄹ’입니다. 그래서 ‘넓다’를 [널따]라고
발음하고, ‘여덟’을 [여덜]이라고 발음합니다. [넙다]/[여덥]이 아닙니다. 다만, ‘ㄼ’ 중에서도 세 가지, “발을 들었다가
놓는” ‘밟다’와 ‘넓죽하다’, ‘넓적다리’ 이 단어는 ‘ㄹ'이 아닌 'ㅂ'을 써서 [밥:따], [넙쭈카다], [넙쩍따리]로
발음합니다. 이 세 가지를 빼고는 모두 ‘ㄹ'로 발음합니다.
정 학창시절,
국어시간마다 늘 공부했던 것이 우리말 발음에 대한 거였는데, 그렇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할 때마다 헷갈리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
다음 내용은요?
성 예, 얼마전에 꽃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난화분을 선물할 일이 있어서
들렀는데요. 멋진 동양난 하나를 지적하면서 “저게 얼마죠”라고 여쭤보니까 5만원이라고 하더군요. 바로 옆에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럼 저것은
얼마죠?”라고 여쭤보니까 그건 7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니 제가 보기에는 같아 보이는데 왜 가격이 달라요?”라고 여쭤봤더니,
그 주인이, “같다뇨, 틀립니다.” “저것은 꽃대가 세 개고, 저것은 꽃대가 다섯 개고, 두 개나 틀리잖아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근데, 여기서
난 화분 두 개에 있는 꽃대가 서로 틀린 게 아니라 다른겁니다.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이고,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이잖아요. 화분 하나는 꽃대가 세 개고 다른 하나는 꽃대가 다섯 개니까 꽃대 개수가 서로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다르다’고 써야할 때 ‘틀리다’고 쓰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런 현상을 보고,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 같지 않으면 다 틀리다고 보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생긴 말 버릇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정 그렇군요. 저도 평상시에 거슬리는 말이 바로 ‘틀리다’ 였는데, 오늘 좋은 지적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소개해 주시죠!
성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졌죠? 이처럼,
흔히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고 합니다. 근데 이런, 더위, 추위를 나타낼 때는 ‘많이’를 쓰면 안 되고 ‘꽤, 무척’ 등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날씨가 많이 추워진 게 아니고, 날씨가 무척 쌀쌀해 진거죠.
이런 날씨에는 아무래도 두꺼운 옷에 저절로 손이
가는데요. 이렇게 겹쳐 입는 ‘웃옷’과 ‘윗옷’의 차이에 대해서 좀 말씀드릴게요. 이것도 구별하는 방법이 무척 쉽습니다. 먼저, ‘윗옷’은
“위에 입는 옷”이라는 뜻으로, ‘위’와 ‘옷’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겁니다. 거기에 사이시옷이 들어가서, ‘윗옷’이 된 거죠. 이 ‘윗옷’은
‘아래옷’의 상대적인 의미이므로, 꼭 아래와 상대일 때만 씁니다.
따라서, ‘윗옷’은 바지나 치마와 짝을 이뤄 위에 입는
옷을 말합니다. 반면, ‘웃옷’은, 남방이나 티셔츠 등 평소 입는 옷 위에 덧입는 외투나 점퍼 따위를 말합니다. 이 ‘웃옷’은 위 아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거죠. 위/아래 개념이 들어있으면 ‘윗’을 쓰고, 그런 뜻이 없으면 ‘웃’을 씁니다.
성 끝으로 간단한 것 하나만 더 소개드리겠습니다. 요즘 결혼식 많이 하는데요. 결혼식에 가면
신부가 참 예쁘죠? 누군가가 결혼식에 다녀와서 “그 신부 참 예쁘대”라고 ‘다이 대’를 쓰는 경우와, “그 신부 참 예쁘데”처럼 ‘더이 데’를
쓰는 경우는 뜻이 다릅니다. 요즘은 일상생활에서 ‘더이 데’와 ‘다이 대’의 발음을 거의 구별하지 않는데요. 그래도 쓸 때는 맞춤법에 맞게
구별해서 써야죠. '더이 데'와 ‘다이 대’를 구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신부를 직접 봤으면 ‘더이 데’를 쓰고, 직접보지
않고 남이 말하는 것을 들었으면 ‘다이 대’를 씁니다. 그래서 “그 신부 참 예쁘데”처럼 ‘더이 데’를 쓰면,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직접 봤는데
참 예쁘더라라는 뜻이고, “그 신부 참 예쁘대”처럼 ‘다이 대’를 쓰면, 나는 신부를 보지 못했지만, 남들이 그러는데 참 예쁘다고 하더라라는
뜻입니다.
정 발음상으로는 거의 구분할 수 없는데, 그런 큰 차이가 있었군요. 네, 오늘도
성제훈 박사님을 통해 잘못된, 혹은 잘 몰랐던 우리말에 대해 많이 공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