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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 4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5. 12. 3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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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뜨르·송악산 벨트 ③섯알오름의 지하진지
최대규모 지하요새 실체규명 안돼

 

한라일보 : 2005. 10.26

▲모슬포 송악산 섯알오름 지하의 미로처럼 뻗은 지하진지 모습.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日본토 군사시설보다 1·5배 커 주목

당국 무관심속에 방치·훼손사례도


 섯알오름 지하 갱도진지는 알뜨르비행장·송악산어뢰정기지와 함께 핵심을 이루는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이다. 섯알오름 지하진지와 알뜨르비행장, 송악산어뢰정기지는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관련 시설들이 트라이앵글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어 이 일대는 국내에서 솝꼽히는 총체적이고 집약적인 일제강점기 군사요새라고 할 수 있다.

 송악산 섯알오름의 거대한 지하진지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제주도 등 관계당국의 관심부족 등으로 인해 정확한 용도나 구축과정 등 실체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는 사이 천장이 무너지거나 일정구간은 벽돌 등으로 막아놓고 창고용도로 사용하면서 점차 왜곡·훼손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섯알오름 조사에 나선 탐사단을 압도한 것은 먼저 지하진지의 거대한 규모다. 차량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넓은 규모에는 입이 벌어질 정도다. 폭 4m, 높이 3m 내외에 이르는 지하통로는 사방으로 뻗어나가 종잡을 수 없다. 칠흑같은 어둠과 고요함 속에 간혹 얼굴을 스치듯이 날아다니는 박쥐만이 지하세계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섯알오름 지하진지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국내에서는 관심부족 등으로 제대로 조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섯알오름 일대의 군사시설은 단연 주목의 대상이다. 이 곳을 방문했던 일본 군사유적 전문가인 스카사키 마사유키씨에 따르면 섯알오름 거대 지하진지의 규모는 5만7천㎡에 이른다.

 이러한 규모는 일본에서 가장 큰 군사시설로 알려진 카나가와현 요코스카시 해군 제1항공기술공장(약 3만4천8백㎡)이나 나가노현 마츠시로 대본영의 지하시설(약 3만2천㎡)보다도 큰 규모다. 마츠시로 대본영은 일본천황과 정부기관을 피신시키기 위해 구축한 곳이다.

▲사진 위로부터 알뜨르 비행장 주변의 콘크리트 시설물과 고구마 저장고로 이용되는 발전소 시설, 마을상여창고로 쓰이는 통신시설.
 일제가 본토결전에 대비하기 위해 구축한 진지중 최대규모의 진지가 일 본토도 아닌 제주섬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비극적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섯알오름 지하진지의 본격적인 구축은 1945년 2월부터로 추정된다. 이 때부터 ‘제주도항공기지위치도’에 보이는 시설들을 위한 지하굴삭이 전개된다. ‘1945년 5월 1일 현재’로 돼 있는 ‘제주도항공기지위치도’에 보면 이 시점에 고각포(일 육군에서는 고사포, 해군에서는 고각포·高角砲라 부름)지휘소와 어뢰고·연료고·통신소 등이 들어가게 돼 있다. 스카사키씨는 이 시점에서 지하진지의 연장은 1천3백미터로 추측했다. 섯알오름 지하진지를 조사한 바 있는 제주도동굴연구소에 의하면 총 길이는 1천2백20미터다.

 그 시기를 전후한 일본군의 상황은 급박했다. 그 해 4월 1일 미군이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한데 이어 일 본토공략도 시간문제 였다. 이에 따라 일본군의 본토사수는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최후의 결전장으로써 제주를 요새화 하기 위한 작업들도 한층 강화된다. 섯알오름 지하의 거대한 참호는 이러한 당시 긴급한 상황속에서 치밀한 계획아래 구축이 시도됐음을 보여준다.

 남태평양이 한눈에 보이는 섯알오름 정상부에는 일제가 구축해놓은 고사포 시설 3기가 잘 남아 있다. 고사포시설은 오름 지하진지의 지휘소와 연결됐을 것으로 보인다.

 오름의 남단 기슭에 깊게 패인 웅덩이는 일제 당시 도내 최대의 탄약고터로 알려진다. 당초에는 지하에 건설됐으나 일제 패전후 폭파시키면서 커다란 웅덩이가 돼 버렸다. 이 곳은 그 후 4·3의 비극과 6·25전쟁의 혼란기에 예비검속으로 인해 수백명의 양민이 학살당하면서 또 한번 비극의 역사현장으로 등장한다. 탄약고터 남쪽에는 연료고터도 남아있다.

 이외에도 모슬포 일대에는 레이더기지·통신시설·발전소를 비롯 용도를 알 수 없는 콘크리트 시설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일제는 1944년 중반무렵에 당시 최고성능을 자랑하던 미국의 B29폭격기의 일본토 공습을 감시하기 위해 모슬포에 레이더기지를 건설한다. 실제로도 모슬포기지에서는 7차례의 B29폭격기 포착에 성공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대정읍 상모1리 이교동에 있는 통신시설은 마을 상여창고로 쓰여지고 있다. 이 통신시설은 규모 등으로 볼때 제주도 주둔 일본군 만이 아니고 일 본토와도 통신이 가능한 통신시설로도 활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대정고 옆의 고구마 저장고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탄약고시설로 알려지고 있으나 일 전문가에 의하면 발전소 시설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시설 역시 고구마저장고로 이용되면서 내부구조가 변형돼 왜곡된 상태다.

 이처럼 모슬포 일대에 일제가 남겨놓은 군사시설들은 다양하다. 이 시설들은 제주도민으로서는 쉽게 잊을 수 없는 고난의 역사현장이자 일제의 전쟁야욕을 생생히 보여주는 역사적 산교훈의 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국의 무관심속에 방치되면서 왜곡·훼손되는 사례도 나타난다. 이에따라 정밀조사를 통한 실체규명과 보존·활용방안 마련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별취재팀



[전문가 리포트]日본토 군사시설과 비교조사 시급



 송악산 섯알오름 일대의 지하참호는 일제강점기 제주도에 구축된 전적지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 시설중의 하나다.

 우선 섯알오름 지하진지는 연면적 5만7천평방미터에 달한다. 그 내부로 들어가보면 거대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일본내에서 가장 큰 군사시설로 알려진 해군제1항공시설 공장은 3만4천8백평방미터다. 또 나가노현 마츠시로 대본영의 지하시설은 3만2천평방미터다. 이들 시설과 비교할 때 섯알오름 지하참호는 1.5배 정도 큰 규모다.

 섯알오름 일대의 각종 군사시설, 즉 정상부의 고사포진지나 송악산 해안가의 어뢰정기지, 탄약고·연료고 등은 지하진지와 연결되도록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섯알오름 주변에는 알뜨르비행장을 비롯 격납고시설, 통신시설 등이 요소요소에 남아있다.

 이처럼 제주도에 남아 있는 일본군 전적지는 일본에 남아 있는 것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 전적지들은 일본군이 자국 밖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어떻게 전쟁을 준비했으며, 전쟁을 치르려 했는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중요한 전적지다.

 이에따라 일본에 있는 마츠시로대본영과 오키나와 등지의 거대 군사시설과의 비교연구를 통한 실체규명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일제하 군사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고 그 보존 및 활용대책을 수립하는 근거자료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찬식/제주대강사·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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