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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 5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6. 1. 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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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뜨르·송악산 벨트 ④무장해제와 알뜨르
일본군 무기·무장해제 과정 ‘생생’


한라일보 : 2005. 11.02

▲섯알오름 정상부 고사포 진지에 설치됐던 해군방어포의 폭파된 뒤의 모습(사진 왼쪽). 일본군 탱크의 추가사용을 예방하기 위해 폭약을 장착한 뒤 폭파시키고 있는 장면(사진 가운데). 미군 폭탄처리반이 일본군 비행기를 파괴하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고 있다.
 일제 패망후 일본군의 무기와 무장해제는 미군에게 있어서 중요한 과제였다. 섬 전체가 거대한 요새로 구축됐을 뿐 아니라 각종 전쟁무기의 규모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군 무장해제와 무기제거 과정 등은 일부만 알려졌을 뿐 현재까지 구체적인 실상이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일본군은 어떤 전쟁무기들을 들여왔으며, 어떤 방식으로 폐기 처리했을까.

 주한미육군사령부의 정보일지(1945년 9월12∼13일)에 따르면 미군은 제주도의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군은 38도선 이남 주둔 일본군을 분석하면서 제주도를 따로 구분하고 있다. 즉 서울·광주·대구·부산·여수 지역의 일본군을 합해 12만1천4백명, 제주도 5만8천3백20명으로 구분해 파악하고 있다. 제주도를 서울 등 기타 지역과는 별개의 독립된 지역으로 인식, 대책수립에 나선 것이다.

 제주 주둔 일본군 항복과 무장해제는 1945년 9월28일부터 10월5일 사이에 진행됐다. 1945년 9월28일 오전 7시 김포비행장. 미군 그린(Green) 대령이 이끄는 항복접수팀이 두 대의 C-47에 탑승한다. 이들의 비행목적지는 한반도 최남단 제주. 그들은 두시간 여의 비행 끝에 오전 9시 무렵 제주읍 정뜨르 비행장(현재의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한다. 정뜨르비행장에 첫 착륙한 미국비행기였다.

▲일본군 제58군이 보유했던 100mm포.
 동시에 미 군단병기장교 파우월(G.F. Powell) 대령이 이끄는 무장해제 파견대도 이날 제주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항복접수팀보다 이틀 앞선 26일 인천항을 출항, 이날 도착한 것이다.

 항복접수팀은 일본군 참모의 안내를 받으며 제주농고로 향했다. 거기서 제58군 사령관 노부루 도야마 중장과 일본 해군의 하마다 사령관, 제주도도사(島司) 센베이 센다 등 일본군 대표 3인의 서명한 항복문서를 받았다.

 마침내 이날 오전 10시59분, 그린대령은 “항복절차는 끝났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제주도민들의 실질적인 해방은 이날 비로소 이뤄진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일본군의 탄약과 무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다.

 일본군무기의 해체·파괴는 제주항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대 등 세 곳에서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모슬포 일대는 알뜨르비행장과 섯알오름 지하의 거대한 갱도진지, 송악산의 어뢰정특공기지 등이 있어서 처음부터 무장해제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중요지역으로 꼽혔다.

 본보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 탐사단이 취재과정에서 확보한 60년 전 사진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군 무기와 무장해제 과정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대에 파괴 되기전에 모아 놓은 200mm로켓포. 멀리 단산이 보인다.
 사진을 보면 당시 모슬포 알뜨르비행장과 송악산 및 섯알오름 일대는 모아놓은 일본군 무기들로 넘쳐났다. 그 종류도 소총 등 개인화기에서부터 대공포·야포 등 각종 중화기와 심지어 전차,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미군이 일본군 무기에 폭약을 장착하는 장면과 폭파전후의 모습, 일본군의 무표정한 얼굴 등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섯알오름 정상부의 하늘을 향한 포신은 곧 미군기를 향해 불을 뿜을 것처럼 전쟁의 긴박감이 느껴진다. 송악산과 알뜨르비행장 일대에 해체하기 위해 모아놓은 중화기들은 제주섬이 중무장한 요새였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공포가 설치된 섯알오름 고사포진지의 사진은 구축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고사포진지는 현재 콘크리트만이 남아있어 당시의 실상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시설과 그 주변의 부속시설 등도 뚜렷하다.

 사진은 60년전 제주섬에 벌어졌던 일촉즉발 위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와관련 국내외에 흩어진 자료수집·분석 등을 통한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섬의 본토결전의 실상을 밝히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별취재팀=윤보석기자(팀장·사회부장) 이윤형기자(편집부 차장) 표성준기자(정치부) 이승철기자(사진부)



[전문가리포트]“다양한 사진 기초자료로 활용되길”

 미국 메릴랜드주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67점의 사진자료는 미군 무장해제팀에 의한 제주도 주둔 일본군 보유 무기를 파괴, 폭파시키는 장면들을 담고 있다. 국립문서보관소에는 사진 자료 외에 무장해제와 관련된 동영상 자료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본토를 수호하기 위한 ‘결7호작전’의 체계적인 준비상황을 생생하게 잘 보여준다. 문헌 자료에서만 확인하던 내용이 동영상과 사진자료로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제주도 주둔 일본군의 공식적인 항복을 받기 위한 미군의 항복접수팀과 무장해제팀이 제주도에 도착한 것은 1945년 9월28일이었다. 항복접수팀의 육군대령 그린(Green)과 해군 중령 윌든(Walden) 등은 제주농업학교에서 항복문서를 받고 28일 당일 C47수송기를 이용해서 제주를 떠났다.

 무장해제팀은 LSM을 이용해서 제주항에 입항하여 일본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무장해제를 실시하고 10월6일 제주를 떠난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에 소개된 사진자료는 9월30일부터 10월5일까지 촬영된 것이다. 무기들은 현장에서 대부분 소각되거나 폭파되었고, 일부는 제주도 연안 바다에 버려졌다.

 무장해제된 일본군 48,524명은 10월23일부터 11월12일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모두 일본으로 철수시켰다. 사진자료에는 송악산 일대의 고사포진지와 격납고 및 그 일대의 건물 등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이번 사진자료를 계기로 일본군전적지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자료가 더많이 수집되어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동전/제주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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