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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 논란 유감

세상보기---------/마음대로 쓰기

by 자청비 2006. 1. 1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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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사학(私學)이라 하면 고구려 때 경당을 들 수 있다. 경당은 당시 평민층 자제들을 위하여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이다. 중국 사료인 신당서(新唐書)에는 고구려의 경당에 대해 “사람들이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시골 벽촌의 가난한 집에 이르기까지 서로 열심히 했다. 큰 길가에는 커다란 집을 지어 경당이라 하고, 청소년이 들어가 경서를 읽고 활쏘기를 연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때 최충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후진양성을 위해 구재학당을 세웠다. 조선시대에는 마을마다 서당이 설립돼 양반자제들의 기초 교육을 담당했다. 근대에 이르러 우리나라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개화기의 사립학교는 설립주체에 따라 서양선교사들이 설립한 선교계 학교와 국내외 인사들이 외세에 저항하기 위해 설립한 민족계 사립학교로 크게 대별된다.

 

  민족계 학교의 효시는 일본상인에 대항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원산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설립한 원산학사(1883)이다. 이어 갑오개혁이후 새 교육제도가 마련되면서 대성학교(1989), 오산학교(1907) 등의 민족학교가 곳곳에 세워졌다. 선교계 학교로는 1885년 배재학당이후 이화학당, 경신학당 등이 선교사에 의해 잇달아 설립된다. 이들 사학들은 오로지 국민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신념하에 국가동량을 길러내는데 헌신했다.

 

  사학법 논란으로 온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던 시절, 사학기관이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그로 인해 위기에서 벗어나고,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시작된 일부 사학들의 폐쇄적 운영으로 인한 구조적 비리가 사회문제화 돼도 미봉책으로 덮어온 것도 사실이다. 사학이 처음 설립당시 건학이념을 돌이켜 보고 실행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논란은 야기되지 않았을 터이다. <200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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