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한 청취자분이 저희 방송 앞으로 편지를 한 통 보내주셨는데요. 차를 몰고가다’에서
‘몰고가다’는 동물에게 쓰는 말이므로 ‘몰고가다’가 아니라 ‘차를 운전하다, 주행하다’라고 써야 하는 게 아니냐.. 란 의견을 물어오셨는데,
그런가요?
성 ‘몰다’에는 크게 네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대상을 바라는 처지나
방향으로 움직여 가게 하다.”는 뜻으로, ‘소를 축사로 몰았다, 상대를 궁지로 몰았다’처럼 쓰죠. 둘째는, “기계나 탈것을 부리거나
운전하다.”는 뜻으로, ‘마차를 몰다/차를 몰려면 운전면허증을 따야 한다’처럼 씁니다. 이 예에 따라 ‘차를 몰고가다’라는 말은 써도 되는
말입니다. ‘몰다’에는 또, “한곳으로 모으거나 합치다.”는 뜻이 있어, ‘그는 문중의 표를 몰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처럼 쓸 수도 있고,
“무엇으로 인정하거나 닦아세워 그렇게 다루다”는 뜻도 있어, ‘충신을 역적으로 몰다, 무고한 사람을 도둑으로 몰다.’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정 한 가지를 더 질문 하셨는데요, ‘뺑소니’라는 말과 관련, ‘뺑소니차에 사고를 당했다’가
아니고 ‘뺑소니를 했다’가 맞지 않냐..란 의견을 물어오셨는데.
성 ‘뺑소니’는 “몸을 빼쳐서
급히 몰래 달아나는 짓”을 말하는 명사입니다. 뺑소니 운전사, 뺑소니를 치다, 뺑소니를 놓다처럼 씁니다. 그래서 차 사고를 내고 도망가는 사람은
뺑소니를 치거나 뺑소니를 놓은 것이고, 그 차에 부딪힌 사람은 뺑소니를 당한 거죠. ‘뺑소니하다’는 표현은 저도 몰라서 국립국어원에 여쭤
봤는데,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라서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정 ‘납득하기 힘들다’ 란 말 많이 쓰는데, 안 쓰는 게 좋다고요?
성 납득(納得)[납뜩]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형편 따위를 잘 알아서 긍정하고
이해함”이라는 뜻으로, 납득이 가도록 설득하다/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처럼 쓰는데요. 이 말은 일본말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이해'로
바꿔 쓰도록 권하는 말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별로 안 쓰는데, 정치인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말 같습니다.
정 정치인들이 자주 얘기하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이때 ‘입장’이란 말도
일본말이라고요?
성 맞습니다. ‘입장’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데, 이 단어도
국립국어원에서 ‘처지’로 순화해서 쓰도록 권하는 단어입니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보다는 ‘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국민 편에서 보면..’처럼
표현 하는 게 더 낫죠.
정 또 ‘차질을 빚다’라는 말도 바꿔 쓰는 게 좋다는데...
성 ‘차질’은 넘어질 차(蹉), 넘어질 질(跌) 자를 쓰는데요. 말 그대로 넘어져서 제대로
걸어가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던 일이 계획이나 의도에서 벗어나 틀어지는 것을 말하죠. 이 단어도, 국립국어원에서 순화하도록 권하는
말입니다.
‘차질 없이’는 ‘어김없이’나 ‘틀리 없이’로 바꿔 쓰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정 ‘차질을 빚다‘라는 말은 언론에서도 많이 쓰는 말인데, 언론부터 제대로 된 우리말을
써야겠어요...
정 또 새해를 맞아 마음이 ‘설레인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설레임’이란 단어가 없다고요?
성 네 ‘설레임’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는 뜻의 단어는 ‘설레다’입니다. 이 ‘설레다’의 명사형은 ‘설레임’이 아니라 ‘설렘’입니다. 따라서, ‘설레이’는
마음이 아니라, ‘설레’는 마음이 맞습니다.
정 사람을 ‘소개시키다’ 란 말도 잘못된 말이라고요? 그럼 어떻게 써야 할지?
성 '시키다'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하다. 또는 하게 만들다"는 뜻으로, 인부에게 일을
시키다처럼 씁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편이 알고 지내도록 관계를 맺어 주는 일"은, '소개시키다'가 아니라 '소개하다'입니다.
제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맺어 주는 거잖아요. 제가 주도적으로 소개하는 것인데, 소개시킨다고 하면 안 되죠.
정 이것도 가끔 헷갈리는데, ‘벌리다’와 ‘벌이다’, 어떻게 구분해야할까요?
성 발음이 비슷해서 헷갈리시는데요. 구분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물리적인 간격을 넓히는 것이면
‘벌리다’고, 그렇지 않으면 ‘벌이다’입니다. 따라서, 입을 벌리고 하품하고, 앞뒤 간격을 벌리는 겁니다.‘벌이다’는 잔치를 벌이다, 일을
벌이다, 사업을 벌이다처럼 물리적인 간격을 넓힌다는 의미가 없을 때 씁니다.
정
‘잃어버리다[이러버리다]’와 ‘잊어버리다[이저버리다]’도 발음 때문에 헷갈리는 대표적인 말이죠?
성 이것도 발음 차이 때문에 그런데요. 구분하는 방법은, 관련된 물건이 있으면 '잃다'고,
물건이 없으면 '잊다'입니다. 따라서, 지갑은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이러]버린 것이고, 학교에서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쓰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옛 추억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잊어[이저]버린 것이고, 옛 애인을 잃은 게 아니라 잊은 겁니다.
정 글로 쓸 때는 헷갈리지 않은데, 발음할 때는 참 헷갈려...
성 방송에서도 많이 틀리던데요. 딱히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신경 써서
발음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죠. 발음 조심하시라고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앞에서 애인을 잊은 거라고 했는데요. 이 때 애인을 잊은 게
아니고, 잃었다고 하면, 옛 애인이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갔다는 말이 됩니다.
정 네. 잊은
것은 기억속에서 사라진 것이고, 잃은 것은 사람이 없어진 것이니까요...
정 나이 차이를
터울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 말 역시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요?
성 ‘터울’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와의 나이 차이"를 말합니다. 따라서, 형제자매간에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런 단어를 학교나
사회 선후배 사이에 쓰면 안 되죠.
정 자동차... ‘끼어들다’가 맞나, ‘끼여들다’가
맞나요?
성 ‘차가 옆 차로로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서는 일’은 ‘끼여들기’가 아니라,
‘끼어들기’입니다. 예전에는 끼어들다, 끼여들다 모두 사전에 오른 표제어였는데,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에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끼여들다’를 빼고, ‘끼어들다’만 넣었습니다. ‘끼어들다’만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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