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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 8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6. 2. 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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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日 본토를 가다 (1)요코스카 군사시설
韓人 강제동원 지하호·공장 등 구축


한라일보 : 2005. 11.24

▲섬을 관통하듯 파놓은 사루시마 요새의 노천굴. 프랑스식 공법으로 구축돼 있다./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해군 제1항공공장 길이 13km 달해

사루시마 요새 역사공원으로 정비


 본보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 특별취재팀이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일본 현지취재에 나섰다. 이번 일본 현지취재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건설된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송악산 일대 및 어승생악 집중조사에 이어 일본토 군사시설과의 비교조사 및 강제동원 실상 파악차원에서 마련됐다.

 특별취재팀의 일본 현지방문에는 정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이병례·심재욱 조사관이 취재팀과 함께 동행, 일본토 군사시설 및 강제동원의 실상을 조사했다. 취재팀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일대와 나가노현 마쓰시로대본영, 나라현의 고요엔 및 돈즈루봉지하호, 오키나와의 구해군사령부지하호 및 특공기지, 평화기념자료관 등을 취재했다.

 정부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 포함된 특별취재팀의 일본방문은 현지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일본 유력지인 아사히·마이니치신문, 오키나와의 류큐신문에서도 특별취재팀의 조사활동을 기사화 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본보 기획과 관련 일본측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스카사키 마사유키씨 등 일본전문가들도 취재팀의 현지활동과 앞으로 한·일공동조사 등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취재팀의 첫 방문지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橫須賀)시는 최근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배치를 둘러싸고 미일정부 및 지방정부·시민단체간 갈등이 상존하는 곳이다. 미국은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사상 처음으로 오는 2008년에 핵추진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를 배치키로 결정했다. 요코스카에 원자력 항공모함을 투입키로 한 것은 이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핵항모 배치에 대해 지방정부나 현지 주민들은 유일한 피폭국인데다, 핵에 대한 불안으로 반대여론이 비등한 상태다. 현재 요코스카해군기지에는 미해군사령부가 있고 일본 자위대가 함께 주둔해 있다.

 요코스카는 19세기 말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각광받으면서 태평양전쟁 시기까지 요새화 작업이 시작된다. 이 곳에는 현재 총연장 13km에 달하는 해군 제1항공공장과 지하병원, 사루시마요새 등 많은 지하호·군사요새가 있다. 제주도내의 지하 갱도진지와 비교되는 요코스카 해군제1항공공장은 일본 최대규모로 추정되나 현재 해군기지 안에 있어 공개가 안되고 있다.

 사루시마(猿島)요새는 요코스카시 동쪽 1.5km에 위치한 무인도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동경만의 가운데 위치해 있는 중요성으로 인해 1881년부터 요새화 하기 시작, 태평양전쟁 시기까지 이어졌다.

▲사루시마 지하요새의 성벽. 탄약고와 막사 등은 이 성벽에 구멍을 뚫고 그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이 섬에 들어서면 거대한 노천굴이 눈에 띤다. 섬의 중앙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관통하듯이 3백m에 걸쳐 폭 4m 내외, 높이는 5∼10m 정도로 파 놓았다. 모든 군사시설들은 돌로 쌓은 성벽내부를 가로로 굴착해서 그 안에다 갖춰 놓았다. 성벽은 긴 벽돌과 짧은 벽돌을 교차하여 쌓아올린 프랑스식 구조물로 만들어졌다. 이 곳에는 탄약고와 막사, 사령부 등 12개 시설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시설을 지상과 연결되도록 만들어서 요새화 한 것이다. 섬 정상부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사용한 대공초소가 있고, 섬 곳곳에는 고사포 자리가 남아 있다.

 사루시마 요새는 모래사장과 무성한 수림, 절벽이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다. 하지만 이곳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됐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1995년으로, 2002년부터는 역사공원으로 정비하기 시작 2006년 완성할 예정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이 임박해지자 요코스카시를 비롯 요코하마 등 가나가와현 일대는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서 95곳의 지하시설과 공장 등이 건설됐다. 이 과정에 2만여명에 이르는 많은 한인들이 강제동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정확한 실태파악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관련 가나가와현 조선인강제연행 조사단 등 현지 시민단체가 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역부족인 상태로 한·일양국의 공동조사 활동 등을 통한 진상규명 등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특별취재팀


[인터뷰]조선인 2만여명 강제동원

하라다 아키히로 의원


 일제강점기 가나가와현 일대의 지하호 구축에는 약 2만여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인(한인)이 강제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본보 특별취재팀이 만난 요코스카 시의회 의원이자, 가나가와현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 사무국장인 하라다 아키히로(58·原田章弘)씨에 따르면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일대에는 72곳이 지하호가 있고, 여기에 동원된 인원은 5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2만여명 가운데 특히 경상남북도 출신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

 하라다씨는 “당시 조선인들을 어떤 방식으로 강제동원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자유모집 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재일본협화회와 경찰등이 관여돼 있었다”고 말했다. 또 가나가와현 일대의 지하호나 방공호는 조선인을 포함 군대가 관여해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라다씨는 이러한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강제동원된 실상을 밝히는데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우선은 증거서류가 될만한 공문서 같은 것이 남아 있지 않은데다, 증언자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아 당시의 상황을 잊어버리거나 장소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등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라다씨는 1991년부터 조선인 강제연행 관련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변호사나 교사 일반시민들로 시민단체를 만들어 조사단을 구성하고 지하호를 실측하거나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에 대한 조사를 주로 하고 있다. 하라다씨는 이와관련 “일부에서는 일본에게 마이너스 되는 일을 왜 하느냐는 시각도 있고, 요코스카에서는 조선인이 강제동원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젊은사람들에게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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