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고 있는 현장들
“강제노역 역사현장 방치
아쉽다”
한라일보 : 200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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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목이 우거지는 등 방치되고 있는 송악산 알오름의
고사포진지. | |
日 침략야욕 생생한 군사시설 너무 무관심 실태조사 통한 보존·정비·활용방안 세워야
“이런 중요한
역사현장을 이렇게 방치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 아픈 역사현장도 산교육의 장이자 역사문화 자원으로 얼마든지 활용 가치가 있는데도 나몰라라 하는
것만 같아 아쉽다.”
최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강제연행 등을 조사하는 일 평화운동가 등 50여명이 제주를 찾아 송악산 알오름
고사포진지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한 역사학자가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다.
사실 올해로 광복 61주년을 맞이했지만 일제가 제주도민 등을
동원 구축한 당시 군사시설 등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제주도내 일제 군사시설은 비행장과
격납고·고사포진지·해안특공기지·대규모 지하갱도·통신시설·토치카시설 등 다른지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남아 있다. 집적도와 규모
면에서도 국내 최고일 뿐 아니라 일본토와 비교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군사시설들은 거의 사장되고 있다.
일반인은 물론 청소년과 역사학도 등 많은 답사객들이 찾으면서 일부는 유명관광지 못지않는 유명세를 누리고 있지만 그 보존관리 실태는 부끄러운
실정이다.
송악산 일대는 알오름 고사포진지 뿐 아니라 알뜨르비행장과 해안가의 특공정기지 등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체험 답사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답사객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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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을 쌓아놓는 등 내부가 훼손되고 있는 송악산 알오름의
지하갱도. | |
# 방치되는
현장
그런데 고사포진지 주변은 잡초가 무성히 자라 답사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된 고사포진지는
관리소홀 등으로 인해 점차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송악산 알오름의 대형 갱도 역시 창고로 이용되는 등 갱도내부가 왜곡·변형될
우려를 낳고 있다.
송악산 해안의 특공정기지도 하루빨리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이 곳은 도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런데도 침식과 풍화작용 및 차량소통 등으로 무너져내린 바위 등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관광객들이 진입하는데 불편을
주고 있다.
이 곳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Y씨(80)는 “행정기관에서 조금만 신경쓰면 될텐데도 매일 고통스런 노역에 시달렸던
아픈 역사현장이 너무 무관심하게 방치되는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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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가득 밀려 들어온 한장동 해안의 토치카가 설치된 갱도
내부. | |
# 훼손되는
현장
무분별한 무속 등의 행위에 의해 갱도 내부가 각종 쓰레기 들로 넘쳐나는 곳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서귀포시 군산과 제주시 삼의양오름의 갱도다. 군산의 갱도내부는 지역주민들의 비념의 장소로 이용하면서 폐비닐과 쓰레기 등으로 쌓여
있다.
지난해와 올해 3월 조사한 삼의양오름의 갱도 역시 모종교단체에서 기도처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1백여m 길이의
갱도내부는 전기를 가설하고 비닐하우스까지 설치하는 등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논오름의 경우도 갱도내부에 인위적인 시설물이 설치되는 등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모슬포 일제 당시 발전소 시설(탄약고)은 고구마 저장고로, 상모1리 이교동의 통신시설은 마을 상여창고로
이용되면서 내부구조가 왜곡되고 있는 실정이다.
# 쓰레기로 몸살
한경면 한장동
해안가의 토치카가 설치된 갱도는 경작지의 입구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각종 쓰레기가 밀려들어와 내부를 가득 메워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곳은
토치카가 설치된데다 완성도가 높아 보존·정비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계오름과 용머리해안의 갱도 역시 각종 생활쓰레기 등으로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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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가 막혀버린 한라산 어승생악 대형
갱도. | |
# 무너져 내리는 갱도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군 제58군사령부 주둔지였던 한라산 어승생악의 대형 갱도는 입구가
막혀버린 상태다. 지난해 10월 본보 특별취재팀에 의해 처음 실체가 확인된 이 갱도는 길이가 3백m 정도 되는 대형이다. 그런데 1년도 안된
시점에 현재는 입구가 매몰돼버려 흔적조차 찾지못할 상황이 돼버렸다. 이 곳은 제58군사령부의 실체를 보여주는 갱도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정밀조사와 보존·정비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옹기 등 생활유물과 대규모 갱도로 관심을 모은 새신오름과 굽은오름의 갱도
역시 하루빨리 실태조사를 통한 보존·정비 방안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에대해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은 “일제 군사시설에 대한
보존정비 방안 계획이 하루빨리 수립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동전 제주대
사학과 교수는 “광복 60년을 넘긴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며 “더 이상 늦기 전에 실태조사와 이를 통한 종합 보존·정비방안이
나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전문가 리포트]日 군사시설 총체적 조사작업 요구
근대문화유산은
국가사적 및 지방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 지난 것을 말하며,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50년 이상이 아니더라도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다. 제주도에는 대정읍의 강병대교회 건물, 알뜨르비행장 비행기 격납고 등 6곳이 지정되어
있다.
최근 문화재청은 제주도내 일제 군사유적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높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역사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8곳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로 하였다. 이번 근대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일제 군사유적에 대한 총체적 조사 작업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세밀한
현장조사와 문헌자료 분석을 통해 군사유적의 형성 배경, 구축 과정, 강제동원된 인력의 실상, 제주도민과의 연관성 등 그 역사성이 우선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유산의 범주에는 역사성이 반드시 들어있고, 역사성은 곧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의 의식과 행위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유산은 현재 우리들에게 그 기억과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기억을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교훈으로 계승할 것이며, 흔적을 오롯이 보존하고 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근·현대 문화유산은 보존과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개발에
따른 경제 수익성 논리에 휘말려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조사팀이 다녔던 제주도 서부지역의 경우 관광개발과 군사기지
용도로 곧바로 훼손될 유적이 여럿 있었다.
그렇다고 서두를 일은 아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일제 군사유적의 근대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그 역사성 규명, 현장보존과 정비, 교육·문화관광 프로그램의 개발 등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긴 호흡으로 다가갈 때이다.
<박찬식/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